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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은 공자의 14년 유랑생활의 고난을 같이했다. 그는 공자학단의 실제적 자금줄이었으며, 한 번도 공자에게 의리를 저버린 적이 없다. 공자는 73세로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도 제자 자공이 달려와 주기를 간절히 고대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사이는 각별했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자공이 신양(信陽)의 재상이 되었다. 장차 부임하게 되자 공자에게 와서 작별을 고했다. 공자는 이때 이렇게 말했다. “아무쪼록 부지런하고, 삼가고, 절조를 빼앗기지 말고, 자기의 공로를 자랑하지 말고, 포악하게 하지 말고, 도둑질도 하지 마라.”
공자님의 말씀인즉 다 좋은데 마지막에 “도둑질” 운운한 것은 좀 자공의 귀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아니, 선생님! 저는 어려서부터 선생님을 섬겨 왔습니다. 어찌 도둑질을 하여 세상에 누를 끼친다 하는 말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가 아직도 자세히 세상이치를 모르는구나. 물건을 훔치는 것만을 도둑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일단 정치를 하는 자가 되면 법을 받들어 백성들을 유익하게 다스리지 못하고, 관리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도둑질인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은 백성의 원망을 사면 곧 도둑놈이 되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도둑놈이 과연 누구일까? 물론 생짜로 남의 땅을 빼앗으려는 일본 우익들이 도둑놈이다. 그러나 그 도둑놈은 백성의 원망을 사는 도둑놈은 아니다. 도둑놈은 우리나라에 더 많은 것 같다. 어제 길을 걷고 있는데 어느 고등학생이 정중하게 절을 한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찬 순결한 모습이었다.
“선생님! 독도를 뺏기게 생겼대요. 어떻게 좀 해주세요.”
난감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부터 우리 땅으로 표기되어 있는 독도, 고지도에 우산도·우도 등으로 명료하게 표기된 독도, 일본 고지도조차 조선 울진현 소속으로 인지하고 있는 독도가 왜 일본땅이란 말인가? 을사늑약 직전에 시마네현의 현고시로서 편입시켰기 때문에? 해방 후 샌프란시스코조약에서 반환 땅으로 명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는 더 근원적인 데 있다. 한국이 깔뵈는 것이다. 왜 깔뵈는가? 이유는 명료하다. 한국의 남북 분열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잃어버린 10년 동안 한·미·일 공조가 깨졌다는 진단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사실 한·미·일 동맹처럼 이 지구상에서 충직한 관계를 찾아보기 힘들다. 균열은 없었다. 과연 건강한 사람을 환자라고 오진하고 약을 퍼 먹이면 어떻게 될까?
우파이념에는 반드시 민족주의가 있어야 한다. 민족의 우월성·자부감·자존심·주체성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요즈음 운운하는 한·미·일 공조는 한국의 미·일에 대한 비굴한 예속으로 비칠 뿐이다. 항상 외환보다는 내우가 더 무섭다. 우리가 국제관계에서 깔뵈는 이유는 남북 공조가 우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제 내홍의 집안은 주변에서 항상 얕잡아본다. 쇠고기 파동도, 독도 문제도 알고 보면 남북 문제를 경색시켰기 때문이다. 독도 문제는 남북이 공조하여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고립시켜야만 해결될 문제인데도, 남과 북은 서로를 고립시키기 위하여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조차 추태를 연출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금강산 유람객의 불운은 원칙적으로 개체들의 오판에서 일어난 우발적 사건일 뿐이며 하등 우리 민족의 대세를 운명 지워야 할 사건이 아니다. 그러한 문제는, 고귀한 생명이 희생된 것에 대한 성실한 규명과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지만,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해결되어야 할 사안이 도무지 아닌 것이다.
나는 단언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시는 바대로, “도둑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남북 문제를 근원적으로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쇠고기 문제를 놓고 우리가 비굴해야 할 이유도 없어지고, 일본이 우리를 깔볼 틈새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서민경제가 풀려나간다. 우리의 경제는 이미 국내만의 논리로 풀려나갈 경제가 아니다. 세계경영을 해야만 풀린다. 세계경영의 제1보가 남북화해며 남북경협이다. 관광객의 사고와 관광사업 그 자체의 역사적 중요성은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금강산관광부터 차단시키고 보는 정부가 과연 ‘비즈니스 프렌들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도올 김용옥 기자





